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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
불 꺼진 폐허는 익숙한 어둠이 도사린다. 주니아는 가방을 조금 더 굳게 쥐었다. 기이하게도 이 장소는 불이 어두울수록 더 많은 금화가 기다리고 있는 경우가 허다해, 영지의 사람들에게 빵을 하나라도 더 배분하려면 누군가는 위험을 감당해야 한다. 모험이 끝났음에도 걸음이 이어진다. 가장 깊은 심연은 인간이 방심한 틈을 타 달려온다. 빛 하나 없는 길목은 모든 것이 인영처럼 보이고 사소한 움직임이 악의로 느껴진다. 그녀는 걷는다. 네 명이 있음에도 꼭 홀로 걷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이렇게 어둡고 좁은 공간을 걷다 보면, 수도원이 생각났다. 끝없이 타야 하는 성화와 사람들의 시선. 철퇴 대신 장작을 들고 걷던 시절의 편린이 날가롭게 살을 베어낸다.
" 난 신성한 의무를 하고 있는 거야. 힘들다니, 당치도 않아. "
그래도 하루 종일 타오르는 불만 지키는 건 조금 힘들 것 같아. 마르타가 조금 웃는다. 그녀의 돼지들은 갈수록 살이 올랐다. 해가 지날 수록 말라가는 자매들과는 반대였지만, 아무도 돼지에게 돌을 던지지 않았으므로 죄를 짓는 자 또한 없었다. 주니아는 그녀와 마주 앉아서 조금 웃다가, 불어오는 바람에 장작을 가방처럼 움킨다. 배가 흐른다. 둘은 서로 천둥이 치는 복부를 비교하다가도, 그저 떠들썩하게 웃고 말았다. 있지, 요즘 드는 생각이 있어. 마르타는 조금 목소리를 낮추고 자신이 본디 한참 전에 옮겨야 했던 짚단을 돌계단에 올려 두었다. 내가 기르는 돼지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주니아는 웃음을 멈췄다가, 잠시 주변을 둘러본다. 적막한 공간엔 아무도 없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오는 것이 죄책감에 불을 붙인다. 짚단 위로 올라탄 업화가 불길처럼 타들어 간다. 마르타는 자신이 기르는 돼지가 도축된다는 사실을 짚고서 아무렇지도 않게 웃고 있었다. 수도원에서 길러져 결국 고기가 된다니. 그렇게 생이 꺼지는 것은 두려우니까, 이 돼지들이 적어도 축복받을 수 있다고 위로라도 던져달라는 물음을 하는 것이다. 주니아는 침묵한다.
" 그분의 곁으로 가겠지. "
높은 곳으로. 불이 꺼지기 전에 다시 가봐야 할 것 같아. 알잖니. 영원히 타는 불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그녀는 서둘러 질식할 것 같은 대화를 벗어난다. 돌계단에 앉은 마르타가 영원히 떠날 것처럼 손을 흔들었다. 밤 공기는 차고, 특히나 매서운 바람이 부는 때에 성화가 꺼지기 쉬웠다. 주니아는 빠르게 평지를 향해 내려간다. 아래로 향하다 보면 영원히 타오르는 불이, 그 빛나는 환희가 자신을 감싸고 그 아래에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축복받을 수 있었다. 용서와 자비란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것이었으므로 가슴 위로 십자가를 새기고 마르타를 용서한다. 기실 마르타를 탓하기엔 자신 또한 너무나 많은 행위를 해왔으므로, 그녀는 스스로가 구원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한 해가 다 채워지기 전 아주 짧은 찰나를 틈타 첨탑에 올라가면 마을이 보였다. 비와 바람이 사라진 날에만 가능한 기행이었지만 이것으로 충분했다. 뛰노는 고아원의 아이들과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게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생. 흘러가는 공기를 손가락 사이로 흩날리게 만들고 제 뺨 위로 닿아 오는 겨울의 한기를 느끼며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떠나보낸 시간과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회상하곤 한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고행자들의 채찍 소리에 매섭게 맞아 깨지는 공상이라도 좋았다.
태초에 아담과 이브가 있었다.
주니아는 처음으로 추방된 자를 머리에서 지운다. 죄는 생각하는 것으로도 죄라 여겨도 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녀는 종종 들판에서 마음껏 뛰노는 삶을 생각한다. 머리칼을 풀어헤치고 맨발로 잔디 위를 뛰어다니며 온몸을 감싸는 천을 뜯어내는 이브가 되고 싶다. 태초라는 단어는 어떤 자유를 함유하고 있는가. 처음 만나는 타인과 불같은 눈을 마주하며 손을 잡고 싶다. 미처 제 때 채워 넣지 못한 장작이 떨어지는 소리 너머로 성화가 꺼진다. 자신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뼛소리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자신의 머리를 보는 일은 익숙하지 않다. 그것도 입이 무너진 채, 뼈만 간신히 움직이는 형체라면 더더욱 익숙해질 일이 없다. 세상이 조각난다. 누군가가 머리를 내려친 것처럼 정신이 잡아지지 않는다. 수녀회의 자매들이 하나둘 주니아의 곁으로 달려온다. 멀찍이 닿지 않는 장소에 수도원이, 머리 위에 십자가가, 발밑에 그토록 애원하던 평원이 있다. 하나같이 가벼운 천옷을 입고 뛰며 서로의 손을 맞잡는다. 화형대 곁을 돌듯, 둥글게 뛰기 시작한다. 한 발걸음에 하나의 멜로디. 이 음악을 알고 있다. 고통처럼 눈물이 쏟아지지만 남을 탓하고 싶지 않다. 앞을 응시하자, 기이하게도 그곳엔 빛이 있었다. 어떤 불보다 밝게 타는 빛. 철퇴를 들자 시야가 맑아진다. 그러니 지금 괴물에게 돌 던지는 자는 자신이었다. 발악처럼 목소리가 터진다. 성화의 이름을 걸고, 나는 인내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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